성폭력 없는 학교가 성평등한 미래의 시작이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제공/© news@fnnews1.com

2016년 이후 문단 및 예술계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성폭력에 대한 폭로는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인맥 자본으로 권력화된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metoo 해시태그를 통해 공감과 연대를 만들어냈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withyou 형태로 확산되었다.

2018년 서진현 검사의 미투를 시작으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폭로되면서 정치권 미투의 기폭제가 되었다. 2018년은 가히 미투정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투운동은 삽시간에 중고등학교로도 확산되었다.

용화여고 졸업생들은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를 구성해 SNS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순식간에 175건의 제보가 접수되었고, 위원회는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을 올렸다. 사립학교 내 성폭력에 대한 전수조사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안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교육청이 조사를 시작했다. 바로 그날 용화여고 재학생들은 포스트잇으로 '#위드유(#Withyou)', '위 캔 두 애니씽(We Can Do Anything·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등의 문구를 만들어 학교 창문에 붙이며 응원했다.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졸업생들이 교사로부터 당한 성차별과 성폭력은 근절되지 않고 재학생들에게까지 자행된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배움의 터전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할 학교에서 차별과 비하 폭력은 마치 미세먼지처럼 학생들의 일상 생활에 스며들었고, 그만큼 위협적이었기에 졸업생과 재학생의 즉자적인 연대가 이루어졌다.

교육청의 특별감사 결과, 성폭력 문제에 연루된 교사 18명을 징계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파면 1명, 해임 1명, 계약 해지 1명, 세 명의 교사만 학교를 떠났고 나머지 15명은 비교적 가벼운 징계를 받고 학교에 그대로 남았다. 그 중 단 한 명의 가해 교사가 기소되었다.

긴 법정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 투쟁은 단지 판결을 기다리는 과정이 아니었다. 학교가 성차별과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인식을 재확인하고 불합리한 학교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노원스쿨미투를지지하는시민모임’ 등 시민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마침내 지난 19일, 가해 교사들 중 유일하게 재판에 넘겨진 전직 국어교사 주 모 씨에게 1심 법원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해당 범죄의 최고형인 5년에 미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가해가 수년 간 지속되었고, 다수의 피해자가 있으며 피해자들이 사회적 인식과 삶의 지표를 세우고 배워나가야 할 학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사의 본분을 망각하고 학생의 존엄과 안전을 파괴한 범죄이다. 한마디로 죄질이 나쁘다. 처벌이 미흡한 것은 범죄를 제한할 법과 제도의 시스템이 그만큼 허술하다는 반증이다.

다른 한편, 피의자의 법정 구속과 실형 선고가 갖는 의미는 크다. 교내 교사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취했던 사립학교들에 일침을 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해 관리와 지도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교육청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문제는 교육청의 징계조치 이후 정년 퇴직으로 학교를 떠난 교사 1명을 제외한 14명의 교사는 여전히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촘촘하지 않은 법망을 피해 간 이들이 교단 위에서 교사의 지위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교사를 교단에 그대로 두고 있는 학교 당국의 처사에 무엇을 바라겠는가? 스스로 학교의 주체임을 포기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사가 바뀌지 않아서 졸업생과 학생이 바꾼 성폭력 없는 학교, 성평등한 학교 만들기의 여정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성폭력 없는 학교, 마을, 직장을 만들어가는 용기 있는 여정에 늘 함께 할 것이다.

 

2021.02.24.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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