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세 시대에 그래도 시간은 부족..속도중독증후군 나타나
- “행복은 어디에?” 묻지만 잡히지 않는 화려한 무지개 같아
- “빨리 더 빨리 세상에 삶의 의미 새기며 ‘느림의 미학’ 배워야”

<편집자주> 현대인들은,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100세 시대를 살면서도 시간이 부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전 보다 더 빠듯하게 긴장하며 여유도 없이 일상을 꾸려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언제나 화려한 행복을 쳐다보지만 손으로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세월이 빠르다’고만 한다. 그 속내를 짚어봤다.

▲물리적 시간은 똑 같지만 감성적 세월은 빠르다/© news@fnnews1.com (출처 Unsplash)

[기획=파이낸스뉴스] 윤수원 기자=‘오비토주(烏飛兎走)’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여기에 나오는 ‘오(烏)’와 ‘토(兎)’는 ‘해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살고 달에는 토끼가 산다’는 전설에서 유래돼 ‘일월(日月)'을 의미한다. 풀이하면 ’세월이 날아 도망가듯 빠르다‘는 뜻이다. 영어에도 비슷한 'Time flies'라는 표현이 있다.

2020년 한해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질척대며 지나간듯한데 돌이켜 보면 훌쩍 지나 올해도 한 분기를 다 지내는 시점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들이 있다. “시간이 너무 잘 간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판박이 푸념이다. 전과 달리 나이 지긋한 연령대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시간이 쾌속으로 달린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시간에 대한 개념이 남녀노소 똑같이 돼 버렸다.

19일 아침, 출근길에 서울 시청역에서 나와 걸음을 재촉하던 직장인 김모씨(28)는 “엊그제 새해 결심을 다잡은 것 같은데 지킬 겨를도 없이 벌써 3개월이 지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날 봄기운이 느껴지는 오후 종로3가 탑골공원 앞. 몰려든 노인들 틈에서 중절모를 쓴 나이 지긋한 박모씨(72)에게 세월에 대해 물어봤다. “100세 시대 아직 갈 길도 멀고 마음엔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이 없어요.”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시간부족사회'를 산다/© news@fnnews1.com (출처 Unsplash)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흘러간 물리적 시간 길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주관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시간이 다르다. 그것은 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들을 겪었는가에 따라 시간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당연히 복합적인 현대사회가 되면서 두뇌 활동량이 많아지고 처리해야할 일과가 늘어나면서 시간에 쫓기게 됐다. 가정과 직장에서 꽉 짜인 일정을 소화해 내려면 제한된 하루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은 일찍이 예견됐었다.

1996년에 창립된 세계미래학회(WFS)의 당시 회장 겸 미래학자 티머시 맥은 시간이 미래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라며 ‘시간부족사회’(Time Famine)를 내다봤다. 시간부족사회에서는 폭증하는 지식 정보와 첨단 디지털 기술을 소화하느라 시간에 쫓기게 된다는 것. 그러다보니 더 복닥대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는 한 통계가 있다. 한국의 직장인 2명 중 1명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뭐든지 빨리 해야 안심이 된다’고 느끼고 있다. 말하자면 신시대에 나타난 ‘속도중독증후군’이다. 그 비율이 조사 대상 직장인의 무려 55.8%나 되었으며, 심지어 ‘일을 천천히 하면 불안하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조급증을 불러 왔으며, 나아가 졸속문화를 낳고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시하는 세태를 가져왔다.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해내야 하는 사회적 심리가 낳은 폐단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부족한 시간을 사는 현대인들은 여가를 가질 틈이 없다. 매일매일 한정된 시간의 일상에서 해결해야할 일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앞가림을 하는 것조차도 버거울 정도가 되면서 사람들은 피로감에 무기력증으로 빠져들게 됐다.

▲코로나19로 더해진 '번아웃' 현상에서 벗어나야한다/©news@fnnews1.com(출처 Unsplash)

한 정신건강 전문가는 "값비싼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강박감에 빽빽한 일정을 서두르다보니 삶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이런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 우려돼 종합적인 대책 방안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지적대로 한국인들은 개인과 사회생활에서 일과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한채,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소진감에 눌려 살아가고 있다. 말하자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따라야했던 지난 일년은 일상을 허비했다는 공허감과 우울감이 더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0%가 '걱정과 스트레스', 65.4%가 '불안과 두려움', 60.8%가 '짜증 또는 화', 59.5%가 '분노 또는 혐오'의 감정을 코로나19 발생 이후 더 많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미래학자 맥은 ‘시간에 쫒기다 보면 자연히 스트레스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갈등과 불신은 시간부족사회에다 코로나19의 장기화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의 관점을 바꿔야할 시점'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짧은 수명을 누렸던 50~60년대보다도 더 여유를 갖지 못할까? 지금이야말로 빨리빨리를 넘어 급하게 몰고가는 '러시(Rush) 문화'에서 탈피해 ‘시간풍족사회’(time affluence)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선진 행복사회가 자랑하는 삶의 안녕감(월빙)을 누릴 수 있다.

▲느림의 미학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news@fnnews1.com(출처 Unsplash)

미국에서 실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시간의 여유를 느끼는 것이 물질적인 부(富)보다도 더욱 강한 삶의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생체 활성화는 정신적 행복감과 신체 건강,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인 ‘행복학’의 주제는 ‘느리게 더 느리게’다. 이 강좌를 개설했던 탈 벤 샤하르 교수는 그가 쓴 책 ‘해피어’(Happier)에서 행복 6계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행복의 비법은 △인간적인 감정을 허락하라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만나는 곳에 있다 △행복은 사회적 지위나 통장 잔고가 아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단순하게 살라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를 표현하라다.

세상이 흘러가는 길은 마라톤 코스와 같아 속도 조절이 필요한데도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단거리 경주의 뜀박질로 내닫는다. 그러니 100세 시대를 사는 요즘 허겁지법하며 삶을 엮어가며 신기루 같은 행복을 추구한다. 내손에 잡히지 않는 화려한 무지개를 호주머니에 넣겠다는 허황된 욕심을 부리면서다.

이제 현대인들은 빠름의 미덕에서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 할 때다. 그래서 ‘閑吾可以養志’-‘사람이 사는데 뜻을 가지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시간이 부족한 이 첨단시대에 가슴에 진하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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