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인사 원칙은 말 따로 행동 따로···“무늬만 공모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인사가 낙하산 자리라는 인식이 팽배해 이런 적폐는 청산돼야 한다는 요구가 드세지고 있다 /© news@fnnews1.com

(파이낸스뉴스=정대영 기자) 정치에서 말은 쉬운데 고쳐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흔히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  ‘낙하산 인사’니 하는 정실인사다. 정치나 권력은 기본적으로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야 하기에 혼자의 힘으로만은 이룩할 수 없는 선망의 영역이다.

그러다보니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력자가 필요하다. 그들의 헌신과 열정이 깃든 발품의 대가로 당선이라는 월계관을 쓰게 된다. 그러면 기여도가 큰 조력자일수록 선거를 이긴 공로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선거 승리에 따른 논공행상이 행해지는 것이다. 핵심 역할을 한 실세에 따라 ‘자리’의 무게도 달라진다. 말하자면 어느 위상에 어떤 중책이 주어지는지는 인사권자의 의중과 속내에 따라 정해지게 되어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조직의 정치적 환경에서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래서 영어에도 'Jobs for the boys'라는 표현이 있다. 영국의 콜린스영어사전은 이 말을 '자격과 능력 상관없이 자신의 지지자들을 특정 직책에 임명하는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이 표현에서 ‘the boys'는 ’공통의 이익과 배경을 갖는 특정그룹의 집단‘을 뜻했다. 당초 이 말은 영국 계급제도에서 특정 학연, 혈연, 지연 등 상위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사회적 결속을 의미하는 ’old boys network'에서 유래됐다.

28일 매일경제는 금융권 공기업을 점령한 정치권 낙하산 실태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3월 기준 금융 공공기관 9곳의 상임감사(9명)와 비상임이사(44명) 총 53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21명이 대통령선거 캠프나 정당 혹은 시민단체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내 편 챙기기 인사다.

이런 행태는 현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권에서도 되풀이돼온 고질적인 병폐다. 오죽했으면 어렵게 ‘낙하산 방지법’을 제정해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이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어 법이 무색할 정도다.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는 이런 낙하산 인사라는 폐습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은 수도 없이 지적돼 왔다. 그런데도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감투는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해 있다. 그래서 ‘낙하산 방지법’이 오히려 ‘낙하산 보장법’이라는 비아냥 거리가 되고 있다.

정부가 공정한 공직 인사를 위해 공모제와 임원추천위원회를 설치해 운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 진정성을 믿는 사람은 없다. 중앙정부나 지자체 산하기관의 경영자 공모는 무늬만 갖췄을 뿐 사전에 내정돼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중앙과 지역의 문화예술 공공기관장 공모에 10여 차례 응시했었다는 L씨는 “경험칙상 거의 전부가 사전에 내정해 놓고 형식만 갖추는 것”이라며 “모양만 갖춘 공모제를 하느니 차라리 임명제로 하라는 불평불만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역사를 보면 당파적인 정실이 인사를 좌우하는 ‘엽관제(spoils system)’는 어느 시대나 있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1855년, 미국에서는 1883년에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능력평가를 통한 인사제도가 구축됐다. 이후 19세기 후반 현대사회로 오면서 이 제도는 선진사회에서 인력관리의 기본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 정조는 필요한 인재를 공정하게 선발하는 ‘공선(公選)' 정책을 실시했다. 그 원칙은 바로 ‘입현무방(立賢無方)’ 곧 ‘현명한 사람을 세우는데 있어 친소관계나 정실에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인력관리전문가 찰스 보들레는 “인사행정은 능력 중심의 ‘메리트시스템(merit system)’에 기초해야 하며 민간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은 더 엄정하게 전문역량과 능률성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공 정책경영 정치학 박사인 메릴리 그린들은 저서 <낙하산 사람들>(원제: Jobs for the Boys : Patronage and the State in Comprehensive Perspective)에서 ‘공직의 특혜 구조는 어디에서나 비민주적이고 부패 행태로 지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엽관제 낙하산 인사 관행이 판치고 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 지켜져야 할 원칙에 반해 낙하산 인사가 우리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면 그거야말로 적폐라 할 수 있다. 바로 낙하산 인사 적폐부터 청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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