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연연(戀戀)’ 않퇴 ‘연연(蜒然)’한 민심 읽어야

사회문화와 물질문명은 시대에 맞춰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지성과 지혜의 융합을 통해 순리적으로 발전을 해 나가기 마련이다. 물이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따라 국가 공동체의 정신적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사회적 성숙’이라 하며, 곧 선진화된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물질적 위상은 높아졌으나 정신적 수준은 그에 걸맞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국민의 외형적 삶의 모습은 번듯해 졌으나 내면은 오히려 전보다 더 번잡해졌다. 물질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소망이 되는 행복지수는 하위권에 쳐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한국사회가 갈등과 대립으로 팽배해 있는 현실은 참다운 사회 정치적 리더십이 작동하고 있지 못해서다. 하루가 다르게 사회가 격변하면서 물리적 환경은 진일보 하지만 정신적 지향은 정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 압축된 현대화 과정...내실화 한계

선진사회는 오랜 역사를 통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치문화 등 전반적인 사회문화체계를 정련시켜 왔다. 하지만 현대화의 과정이 압축됐던 우리 사회는 내실화를 이루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 선진화가 늦어지는 이유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를 두고 ‘존경’이란 수식어를 적용하는 자체가 적합치 않다.

이런 풍토에서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존경은커녕 임기 동안 균일한 지지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정파나 이념에 매몰된 사회정치 바탕에서 대통령부터가 그 ‘팬덤 정치’ 행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정치로 촉발된 촛불혁명이 탄핵으로 귀결되며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하지만 지지층에 영합한 독선적 정책으로 인한 민심 이반으로 결국 정권을 넘겨줬다.

20대 대선에서 48.56퍼센트의 득표로 권력을 잡은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여의도 정치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개혁성으로 기대를 모았다. 70여년간 권좌의 상징이었던 청와대 시대를 접고 국민 소통을 외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인 윤 대통령이다. 그랬지만 이내 국민들이 등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적 단련 과정 없이 일약 국가수반에 올라 혁신의 반짝 이미지를 보이더니 취임 초반부터 지지율 하락세가 거세다. 통상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초 누리던 허니문의 지지율에 근접도 못한 체 긍정평가가 30%선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부정평가가 긍정의 2배가 넘는 67%선에 달한다. 오죽했으면 ‘취임덕’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보편적 지지로 참다운 ‘리더십’ 발현 기대

여기에서 흔히 듣는 말이지만 ‘리더십’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냉정히 보면 지금까지 참다운 리더십을 발현한 대통령은 없었다. 그러니까 근래 대통령들은 다 우여곡절을 겪었고, 현 신임 대통령도 취임 하자마자 나타난 최저 지지율이 말해 주듯 국정의 발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정치적 분란에 휩싸이는 모양새다.

19대 대선에서 41.8퍼센트를 득표했던 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달 이상 80퍼센트에, 일 년이 지날 때까지도 70퍼센트선의 지지율을 보인 것과 대비된다. 취임 초반 지지율이 급락하자 ‘나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던 윤 대통령의 반응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적 기관의 여론조사는 국민의 뜻이 반영된 것인데 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부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했던 아니었던 국민의 ‘보편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 진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실현해 주기를 모두가 기대한다. 윤 대통령의 표현대로 지지율에 ‘연연(戀戀)’하지는 않퇴 여론조사에 담긴 국민의 ‘연연(蜒然·눈으로 보는 것처럼 아주 뚜렷함)’한 심정은 헤아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실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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