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 법무법인 정론 변호사
최창호 법무법인 정론 변호사

법조인이 되고,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사에 대한 엄정한 기준이 무디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한 사건을 보게 된다. 그런데 반대 당사자의 사정을 알아보면 그럴 수가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소, 고발, 진정, 변사체 검시 등은 수사기관이 수사를 개시하는 원인이 되는 수사의 단서가 된다. 청구취지와 청구원인을 소장에 기재하는 민사소송과는 다르다. 소송물이라는 개념이 없는 형사절차에서 고소라는 제도는 수사기관에게 엄청난 업무량을 부과하고 있다.

그 동안 고소사건의 처리와 관련해 고소사건 집중수사 지휘제도, 고소장 각하제도 등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고소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려고 시도했다. 검찰의 입장에서는 고소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경찰에 수사지휘를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하여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불기소처분에 대한 항고가 있는 경우 고검에서는 항고인 주장 중에 판단이 유탈된 부분에 대한 재기수사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지검에서는 어차피 수사를 하여도 밝히지 못할 내용이다. 고검에서 이유 경정으로 해결하면 되는데 공연히 재기수사명령을 내려 업무량을 증가시킨다고 불만이 많다.

재기수사명령서를 원처분 검사에게 송부하여 수사의 오류를 지적하고 수사기법 향상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수사에 대하여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또 원처분 검사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지방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오후 5시경에 고소인 부부가 사무실에 방문했다. 부동산 딱지를 구입하였다가 손해를 본 사건이었는데, 사실상 무고성이 있는 고소였다. 고소인이 경제적 손해를 입었기 때문에 무고 인지를 하지 아니하였을 따름이었다. 사실관계와 법률관계를 1시간 이상 설명을 했다. 고소인들은 필자의 말실수가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반복하여 유사한 질문과 주장을 계속했다.

혹시 녹음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이해를 하고 돌아가자고 했으나, 부인은 막무가내였다. 갑자기 그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격렬하게 위협적인 어조로 큰소리를 쏟아냈다.

순간 머리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맞받아쳐서 화를 내야 하는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런 판단이 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냥 돌아가시고 항고를 하시라고 안내했다. ‘청송지본 재어성의(聽訟之本 在於誠意)’란 말이 있다. ‘송사를 처리하는 근본은 성의에 달려 있다’라는 뜻이다. 이 말대로 성의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우울했다.

고소사건의 약 20퍼센트만이 기소되고 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언이 있다. ‘송사는 패가망신’이고 ‘척(隻)지고 살지 말라’는 옛말의 의미를 잘 살펴 고소장을 함부로 작성하여 제출하는 일에는 신중을 기할 일이다. 기본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때 처분문서를 명확하게 작성하지 않는 법률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의 파괴를 방지하고 분쟁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감소를 위하여 법률가의 존재는 의미를 갖게 된다.

◆ 법무법인 정론 변호사 최창호

(現 한양대 겸임교수, 前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서울서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 연수원 2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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