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 대변인 김민지 변호사.
대한변협 대변인 김민지 변호사.

통상 ‘법조인’은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를 일컫는다. 같은 ‘사’자가 들어가지만 한자로는 구분된다. 판검사는 일 사(事)자를 쓰는데 변호사만큼은 선비 사(士)를 쓴다. 언어는 문화를 담아내기에 한자어를 달리 썼을 때는 다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왜 변호사에 대해선 ‘士’로 표현했을까? 어떻게 보면 변호사는 법의 정의에 호소하는 의뢰인의 옆에서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정신적·정서적으로 북돋아 주면서 논리적으로는 시시비비에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원론적으로 변호사는 형사소송에서 피고인 등을 위해 변호하고 민사 및 행정소송 등에서 의뢰인을 대리해 소송을 수행하거나, 법률 자문을 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즉, 소송에서 당사자들의 ‘입’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변호사다.

그런데 이런 변호사들의 ‘입’이 돼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이다. 변호사들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한 변호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 3만 변호사들의 입, <파이낸스뉴스>는 대한변협 대변인 김민지 변호사의 궤적을 따라가 봤다.

김민지 변호사(오른쪽)가 이종협 대한변협 협회장으로부터 임명장 받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변협 대변인 시험이 변호사 시험만큼 긴장이 됐어요”

 

김민지 변호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초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파트원 사무실을 찾았다. 법무법인 파트원의 파트너 변호사이기도 한 김 변호사는 1952년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 창립 이래 7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 선발 방식으로 선발된 대변인이다.

12.5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선발된 그녀지만, 김 변호사는 아직도 대변인 시험을 치를 당시를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하다고 말한다.

“정말 우연한 기회였어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대한변협 대변인이었는데, 창립 이래 최초로 공개 선발을 한다는 공고가 나온 거예요. 지원서를 낼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서류 전형에 덜컥 합격하고 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죠. 1차 지필고사, 2차 집단토론, 3차 협회장 면접이라는 세 가지나 되는 전형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웃음) 원고지에 글을 썼던 게 중학생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정말 변시(변호사 시험) 때만큼이나 긴장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대변인 시험 난도를 보면, 김 변호사의 말이 마냥 엄살만은 아닌 듯하다. 지필고사에서는 변호사 업계의 화두인 디스커버리 제도(재판 증거개시 제도)와 기업에서 관심이 큰 ESG 경영에 대한 성명서와 행사 보도자료를 작성하도록 했다.

집단토론은 특정 법안에 대한 찬반을 심사위원이 지정해주면 응시자들이 주장과 근거를 만들어 논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등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로 대변인 시험이 진행됐다. 최종 단계에서는 변협회장이 직접 면접을 보고 대변인으로서의 자질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변협 창립 이래 최초로 진행된 대변인 공개 선발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이해가 됐다.

신당역 사건 KBS뉴스 출현
신당역 사건 KBS뉴스 출현

“우리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 되겠단 일념뿐예요”

대변인으로 활동한 지 약 5개월, 짧은 기간이지만 어떠한 각오로 대변인 활동에 임하고 있는지, 또 처음 대변인 활동을 시작하며 가졌던 마음가짐에 변화는 없는지 물어봤다.

“변호사가 되고자 처음 마음먹었던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대한변협의 대변인 활동을 하는 이유도 그 처음의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변호사로서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법률 자문을 해왔다면, 대변인이 된 지금은 변호사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많은 국민에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두 가지 일 모두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벌써 6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변호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던 초심을 이야기하는 김 변호사의 두 눈은 반짝였다. 선비 사(士)자를 쓰는 변호사가 거짓을 얘기하면 안 되는 그 직분처럼 그의 눈빛은 진실을 비추고 있었다.

대한변협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사회보고 있는 김민지 대변인.
대한변협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사회보고 있는 김민지 대변인.

“피해자 국선변호사 활동에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우리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했다는 김 변호사에게 그동안의 활동 중 어떤 게 가장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지 궁금해졌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김 변호사의 답변은 의외로 담백했다.

“변호사로서 공익 활동을 하는 것 중에 가장 보람을 느끼는 건 피해자 국선변호사 역할이지요. 성범죄와 아동학대 사건은 다른 사건들보다 피해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요.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위축되지 않고 사건이 발생한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도록 돕고, 공판 과정에서도 피해자의 증언이나 처벌 의사가 재판부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해주죠. 또 필요할 경우에는 ‘피해자보호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해요.”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지난 2012년부터 11년째 시행되고 있는 제도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시작으로 아동학대 피해자, 학대 피해 장애인 등으로 지원 대상을 넓혀나가고 있다. 현재 전국 검찰청에 모두 23명의 피해자 국선전담 변호사가 배치되어있고, 전담은 아니지만 사선 변호와 병행하는 변호사도 약 600명 정도가 있다.

그만큼 업무의 범위와 영역이 넓다 보니,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선뜻 자처하기는 쉽지 않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민감한 사건 변론엔 정말 많은 수고를 쏟아야 해요”

그렇다면 김 변호사가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김 변호사는 피해자의 증언이 반드시 필요했던 한 성폭행 사건을 회상했다.

“성폭행 사건이었는데, 피해자의 증언이 없으면 피고인의 유죄가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피해자의 증언이 꼭 필요한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피해자가 그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개명까지 하고 연락도 전혀 받지 않았죠.

겨우 피해자와 연락이 닿았지만, 그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들고 증언했을 경우 보복이 두렵다는 이유로 증언을 거부했었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겨우 버티고 있는 피해자에게 무리하게 증언을 부탁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피해자를 설득했고, 결국 피해자가 증언하기로 마음먹어 피고인의 유죄를 밝힐 수 있었어요.”

매사에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 임하는 김 변호사의 장점이 잘 발휘된 사건이었다.

“변호사에겐 모든 경험이 값진 자산이 되고 있어요”

김 변호사는 변호사가 되기 전 대기업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영업맨 출신이다. 처음엔 영업 업무가 변호사와 무관하다는 생각과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로스쿨에 입학했던 탓에 조급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고 나서 대기업 영업팀에서 일했던 경험이 기업 고객들이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의뢰인들을 자문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김 변호사는 말했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로스쿨에 입학하고 있어요. 그중에는 법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다가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늦깎이 수험생도 있어요. 혹시나 예전의 저처럼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적어도 변호사에게는, 내가 겪어온 모든 경험이 나만의 값진 자산이 되거든요.”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조언도 잊지 않는 김 변호사의 마음씨가 참 예뻤다. 김 변호사가 앞으로 만들어 갈 더 나은 내일, 더 좋은 사회가 기대된다.

“끊임없이 사회 이슈에 관심 갖고 공부하도록 하세요”

12월은 로스쿨 입시생들에겐 가장 중요한 달이다. 대부분의 로스쿨이 12월 초에 합격자 발표를 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2023년 15기 로스쿨 예비 입학생이자 후배들에게 다시 자신의 경험칙을 토대로 격려도 빼놓지 않았다.

“의뢰인의 고민을 해결하고,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유기적인 사고가 필요해요.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이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변호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느끼고 있어요. 로스쿨에 재학 중일 때는 수험 공부하기에만 급급했는데, 막상 변호사가 되고 보니 이전에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이 의뢰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껴요. 사회가 급변하고 복잡해지는 만큼 범죄의 형태나 피해의 형태도 복잡, 다양해지고 있어요. 늘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공부할 것을 당부하고 싶어요.”

‘사회에 보탬이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김 변호사는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피해자 국선변호사, 서울행정법원 소송구조 변호사, 장애인법률지원변호사단 등으로 사회 곳곳에서 소외된 이웃을 위한 활동에 참여해왔다. 가사법과 형사법 부문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지금도 서울 영등포동 마을변호사, 영등포구 청년정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김민지 변호사 약력

-법무법인 파트원 파트너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대한변호사협회 입법특별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광고심사위원회 위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서울남부지방법원 국선변호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피해자 국선변호사
-서울행정법원 소송구조변호사
 -서울 영등포구 청년정책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영등포동 마을변호사)
-서울서초경찰서 수사민원상담센터 자문변호사
-경기 남양주시청 법률상담관

 

▶본 기사는 <사실너머 진실보도> 파이낸스뉴스 신문 15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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