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선수-노동운동가-4선 국회의원...“생활정치 구현”
• 1996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기여 공로 ‘국민포장’
• 압도적인 찬성으로 헌정사상 여성 국회부의장 2번째
• “협치문화 정착될 수 있도록 주어진 역할 철저 수행”

뚝심’과 ‘소신정치’의 아이콘인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국회부의장실)
뚝심’과 ‘소신정치’의 아이콘인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국회부의장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인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또한 체육인 출신으로 헌정 사상 가장 높은 정치적 지위에 오른 여성이다. 학창시절과 실업팀 농구선수로 활약하며 스포츠의 공정한 ‘룰’(규칙)을 체득했던 그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뿌리 깊은 사회적 불공정과 맞닥트리게 됐다.

실업팀 은퇴 후 관례대로 시중은행에 입사한 사회초년생 김영주가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불평등과 철저한 차별은 그를 정치로 이끌게 하는 동력이 됐다. 은행 창구에 배치된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임금, 대우, 승진 등 다양한 면에서 차별에 내몰렸다.

김 부의장이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우리 사회 남녀평등의 기치를 치켜든 것이다. 그 후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에서 활동하며 상임부위원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1996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김 부의장은 농구선수에 노동운동가답게 ‘의리의 여장부’로 통한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신뢰와 의리로 끝까지 이어가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것이 김 부의장의 정치적 자산인지도 모른다.

이를 토대로 2022년 7월 4일 그는 출석 의원 258명 중 243명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됐다. 여성으로서는 역대 2번째다.

김 부의장은 1963년 노동청이 생긴 이래 최초의 여성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돼 근로자의 ‘저녁이 있는 삶’을 주창했다. 이로써 우리 사회에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개념이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파이낸스뉴스>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김영주 국회부의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외치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의원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외치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의원실)

◆ 다음은 김 부의장과 일문일답.

l 운동선수를 거쳐 은행에 취업해 부딪힌 성차별에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농구선수는 실력만 있으면 차별을 받지 않고 경기에서 뛸 수가 있다. 그런데 사회에 진출해보니 상황이 달랐다.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행에 입사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연차가 쌓여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의 장벽이 쳐졌다. 당시 입행 5년차인데도 갓 들어온 신입 남자직원보다 급여가 적었다. 승진은커녕 후배 남자직원들이 승진을 독차지 했다.
70~80년대는 여성은 결혼하면 퇴사를 해야 하는 풍토였다. 아예 여직원들에게는 결혼하면 퇴사해야 한다는 각서를 강요했다. 실제 내 경우도 딸아이 낳고 복귀하니 신입사원 보조직으로 발령이 났다. 한마디로 남성과 동일한 대우를 받으려면 “성전환 고시”라도 있다면 그것을 통해 합격하는 꼴이었다. 출산·육아휴직 등 여성을 위한 제도가 전무한 데다 여성에게만 상식, 영어, 논문, 실무 필기시험을 요구했다.
그래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20년간 헌신했다. 국내 은행 중 최초로 임신부 유니폼을 만들어 여성의 권리 찾기에 나섰다. 마침내 1996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김영주 국회의장은 주민들과의 소통으로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의원실)
김영주 국회의장은 주민들과의 소통으로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의원실)

l 영등포 기반의 의정활동을 하며 많은 성과를 냈다. 특별한 비결이 있다면.

▶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끝까지 신뢰와 의리를 지키는 것’이 나의 ‘밈(meme·캐릭터)인 것 같다. 그래서 주민들께서 친화력이 뛰어나고 일을 잘 한다며 ’영등포 주먹, 김영주‘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것이 내게 자부심이 됐고 정치인생의 뿌리가 됐다. 
영등포구에 둥지를 튼 것은 1987년 당산동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을지로 3가에 있는 직장까지 지하철 교통편이 좋았던 데다 당시 시모를 모시고 있었다. 또 딸아이가 영등포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게 되니 자연히 지역의 사정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의 생활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소통의 기회를 통해 ‘생활정치’의 기반을 닦았다. 
이런 바탕에서 국회에 진출해 4선 의원을 지내면서 생활정치 구현에 앞장섰다. 그동안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다양한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17대 국회에서는 ‘준공업지역 악취·소음 환경 개선’을 위한 관련법을, 제19대 때는 ‘주가조작방지법 처벌수위 상향’, 제20대는 ‘2017년 포항지진사태 대비 건축법 개정’, 제21대에 들어서는 ‘저출산 대응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법률을 강화시켰다. 
특히, ‘남녀고용평등법’ 개정과 ‘가족친화법’제정을 통해 출산·육아 환경을 대폭 개선하고 근로시간 단축 활성화를 이뤄냈다.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환경노동위원장으로서 국회의장 대신 의사진행을 했던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자료=연합뉴스)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환경노동위원장으로서 국회의장 대신 의사진행을 했던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자료=연합뉴스)

l 국회 필리버스터에서 여성 최초로 국회의장 역할을 해 크게 주목 받았다.

▶ 2016년 2월 27일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상임위원장이 국회의장을 대신해 의사진행을 하게 됐다. 당시 정의화 의장께서 닷새째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다보니 의장단이 체력적 한계를 느끼면서 내게 의사진행을 요청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국회상임위원장이 첫 의사진행을 한다는 사실보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이 본회의를 진행한다는 점이 부각됐다. 국회에서 의장석에 앉은 여성의 존재 그 자체가 이슈가 된 것이다. 그때는 여성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던 시기라 의장석에 앉은 여성이 관심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개인적으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여성이 국회의장석에서 의사 진행하는 자체가 관심을 끈 것은 어쩌면 ‘유리 천장’ 의식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여성이기 때문에 받아온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대한 뼈아픈 경험과 이에 맞섰던 노동운동의 주역으로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뚫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다지게 됐다. 
이제 한국사회는 분명 성차별의 벽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지금 대한민국 여성의 권리는 부당함과 차별에 맞서 싸운 많은 여성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일궈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더욱더 여성 스스로 증명하고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나의 소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017년 8월 11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참가하고 있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자료=연합뉴스)
2017년 8월 11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참가하고 있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자료=연합뉴스)

l 고용노동부장관에 임명됐을 때 노동운동가 시절과 비교해 현황은 어땠나.

▶ 환경노동위원장 출신 장관으로 ‘노동’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 뛰고 관련 의정활동을 수행했던 것과 노동부장관으로서의 역할은 달랐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연계된 현안을 해결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시절, 고위직급이 아니면 정부 관계자를 만날 수조차 없었다. 2017년 장관에 취임해 산별노조, 제조업 노조 등 많은 노동단체의 의견을 청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전국 10곳에 ‘현장노동청’을 설치했다. 꼭 필요한 민원 청취를 위해서는 장관도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17일 동안 전국에서 6천2백건의 노동 관련 민원 및 상담을 접수했다. 이는 평상시 노동부 접수 국민제안의 4배 수준으로 10년치 민원에 해당한다. 당시 국민제안은 66%를 정책에 반영하고, 진정 건은 82%를 해결했다. 이에 노동부가 정부부처 최우수 부처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동부장관으로 역점을 둔 것은 ‘주 52시간 근무제’ 추진이었다.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근로시간 단축을 특별히 당부했다. 그런데 노사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별, 개별 기업마다 입장이 모두 달랐다. 의견차 해소방법은 소통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경제인단체, 양대 노총, 개별 기업 방문 등을 통해 설득하고 조율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그 결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마침내 52시간 근무제를 관철시켰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전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국회)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전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국회)

l 국회부의장으로서 여야간 역할과 국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 지난해 5월, 민주당 내부경선을 통해 선출된 첫 여성부의장으로서 여야간 ‘소통메신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는 초선 때부터 지닌 변함없이 주어진 역할에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두었다. 
의정은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많아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다. 하지만 의장단의 한 축으로 여야간 ‘브릿지빌더(가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왔다. 앞으로도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국회 운영을 통해 의회정치 복원에 앞장서겠다. 
이와 함께 헌정사상 첫 선거제 개편 의제로 20년 만에 개최한 전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선거제도 마련을 위해 여야, 무소속 국회의원 100명이 참석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국민 신뢰를 높이고 정치가 한 단계 도약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국회부의장 출마 시 의회외교 강화를 공약했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를 중심으로 한 의회외교를 핵심동력으로 만들어 국익외교로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서울시의 제2세종문화관의 문래동 건립 취소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진=의원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서울시의 제2세종문화관의 문래동 건립 취소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진=의원실)

l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취소 관련해 적극 대응 중인데 현 상황은.

▶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은 이미 모든 행정적 절차를 마친 사업이다. 2012년부터 추진돼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하고 서울시의회, 영등포구의회에서 행정적 과정까지 거쳤다. 지난해 예산까지 마련돼 국제현상설계공모만 시작하면 됐다. 
그러나 전 영등포구청장 재임 시 서울시와 문래동 토지 무상사용 협약(MOU)을 체결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다가 서울시장과 영등포구청장이 교체되면서 타지역 이전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그러다 현 영등포구청장은 취임 직후부터 제2세종문화회관 이전을 주장하며 작년 말 서울시에 구두로 이전요청을 했다. 이를 검토한 서울시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사업의 일부로 제2세종문화회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서울시민 누구나 실패한 사업으로 알고 있는 오세훈표의 ‘철지난 제2한강르네상스’ 사업이다. 
아직도 한강 잠원지구에는 ‘새빛섬’이라는 사업 실패 상징물이 그대로 방치돼, 매년 예산만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서울의 허파와 같은 여의도공원을 4~5천평 없애고, 제2세종문화회관을 짓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의 모순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산이 없는 영등포구, 그 중 구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유일한 대형공원을 줄인다는 계획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지난달 영등포구청장이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펜스를 기습철거 시도하고, 영등포구의회 의장부터 구의원들까지 릴레이 단식농성 중이다. 
하지만 구청장을 비롯한 집행부 누구도 소통하려 하지 않고,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었음에도 새벽에 기습철거를 했다. 현재 문래동 제2세종문화회관 대책위원회를 주민 스스로 구성해 발대식까지 진행, 앞으로 주민 여러분과 끝까지 사수해 나갈 것이다. 행정심판, 주민소환제 등 다양한 방안도 검토 중에 있다.

중남미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부켈레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국회)
중남미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부켈레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국회)

l 2030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을 위해 중남미, 유럽 등 방문외교를 펼쳤다.

▶ 국가적인 프로젝트인 2030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전개해 왔다. 최근 여야의원들과 함께 방문한 국가들 중에는 한국처럼 부의장 및 국회의원들이 직접 엑스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사례는 처음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해주었다. 
먼저 지난해 10월 26일에서 11월 3일까지 헝가리와 세르비아를 공식 방문했다. 헝가리는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부산엑스포 유치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세르비아는 부치치 대통령 면담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며 지지를 당부했다. 이에 세르비아 정부는 전략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 
올해 2월 15일에서 17일까지는 몽골을 공식 방문해 후렐수흐 대통령과 잔단샤타르 국회의장 면담을 통해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어 5월 15일부터 23일까지는 중남미 콜롬비아와 엘살바도르를 공식 방문했다. 
콜롬비아는 작년 서면으로 한국 지원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정권이 바뀌어 입장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번 순방을 계기로 콜롬비아의 부산엑스포 지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부켈레 대통령과 카스트로 국회의장을 차례로 만나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요청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국회)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국회)
해외에서 의정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국회) 
해외에서 의정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영주 국회부의장.  (사진=국회) 

l 노동 분야에서 시작해 국회 부의장직을 수행하는 정치철학을 요약하면.

▶ 국회의원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국민을 위한 정치가 본령이다. 당리당략이나 정쟁이 아닌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갈등과 반목을 넘어 협치와 희망의 정치를 국민에게 보여드려야 한다. 
불신과 몰이해의 정치문화 개선 의지가 중요하다. 국회부의장 당선 당시 여야 소통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했던 것을 늘 기억하고 있다. 21대 국회의 남은 1년간 협치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주어진 역할을 철저히 수행해 나가겠다고 다짐한다.

 

◆ 김영주 국회부의장 프로필

- 17, 19, 20, 21대 국회의원(현) 
- 제21대 후반기 국회부의장(현)
- 서강대 경제대학원 경제학 석사
- 몽골국립대 국제관계대학 명예박사
-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 의장
-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
- 전국금융노련 상임부위원장
- 한-몽 양국관계 개선 공헌 <몽골 북극성 훈장>
- 남녀고용평등증진 공로로 <국민포장>

 

▶본 기사는 <사실너머 진실보도> 파이낸스뉴스 신문 1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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