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및 준법감시인 제도’의 본래 목적 달성이 미흡
금융감독 당국의 수차례 내부통제 혁신방안도 ‘별무효과’
“준법감시 인력 보강에 앞서 시스템의 근원적 혁신 절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권의 '내부통제 및 준법감시인 제도'(Compliance Program)는 19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배구조 개선권고에 따라 사외이사·감사위원회와 함께 도입됐다. 

미국에서는 이 제도가 1970년 '은행비밀보호법'(BSA)이 처음 제정된 이래 수십년간 금융권 규제 변화와 준법 환경이 자리를 잡아왔다.

이 제도는 엄격한 규정 준수를 통해 금융기관의 신뢰도나 잠재적 금융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금융사의 고객, 직원, 이사 및 주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제도가 도입·운영되어 왔으나 제대로 정착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동안 내부통제제도를 관리하고 준수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준법감시인제도 자체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직무수행에 있어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 됐지만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준법감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사회와 고위 경영진을 감독할 수 있는 독립적인 위상을 확보해야 하고, 회사가 이를 지원하는 체계적인 절차와 명확한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포괄적인 리스크 측정을 위해서는 감시기능과 경영 정보 시스템, 그리고 정책, 절차, 한계 등에 대한 종합적인 내부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 만큼 금융사 준법감시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금융권에서 과연 그에 걸맞는 '내부통제 및 준법감시인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지난 11일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사진=파이낸스뉴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지난 11일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사진=파이낸스뉴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14년 8월 '금융사고 근절 및 신뢰회복을 위한 금융회사 내부통제 강화방안'을 통해 준법감시인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했다. 이후 2018년에는 '금융기관 내부 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해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는 금융권의 내부통제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것은 제도만 갖췄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선진국에서 정착된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우리  풍토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여건과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내부통제 및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금융감독 당국이 '금융기관 내부 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했던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5년간 준법감시인들이 사용한 업무정지 요구건은 17건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상위 5개 시중은행과 5개 저축은행, 5개 증권사 및 17개 손보사와 23개 생보사 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준법감시인들의 업무정지 요구건 중 8건이 1개사에서 사용된 점을 감안하면 준법감시 활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자 금감원은 또 다시 지난해 금융사고 방지를 위해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혁신 방안은 내부통제 강화 활동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준법감시 부서 인력 비율을 전체 임직원의 0.8% 이상으로 보고 2027년 말까지 의무화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올해 8월 말 기준 국내 20대 은행의 준법감시 부서 인력은 689명으로 지난해 말보다는 104명 늘었다. 이를 전체 임직원 수 대비하면 0.63%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량적으로 인력만 늘린다해서 내부통제 부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국내 19개 은행장들이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국내 19개 은행장들이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감독기관의 사령탑에 오른 작년부터 올해까지 부실한 내부통제로 인해 잇따르는 금융사고는 줄기는 커녕 갈수록 더욱 교묘하고 전문화되어 가는 양상이다. 금융 전문가들이  내부통제 개념 정립과 감독 체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내부통제제도가 요구하는 △재무정보에 대한 신뢰성 확보 △관련 법규와 내부정책 및 절차 준수 △업무의 효율성 제고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사회, 경영자, 직원이 준수해야하는 기업 내부의 프로세스를 전면 쇄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통제는 어떻게 보면 준법감시라는 큰 틀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횡령·배임과 같은 금융사고에 대증요법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준법감시시스템'(Compliance System)을 혁신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이에 대해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은행이 옛날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고 감독당국에서도 기준을 더 높여 운영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며 감독당국의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미 지난해 정무위 국감에서 내부통제의 문제점이 도마에 올랐는데 올해는 금융사고의 규모화·고도화가 더욱 심화된 상황에서 국감 증인으로 준법감시인 출석을 신청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크다. 

만약 선진국처럼 준법감시인이 제 역할을 해왔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태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은행의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절대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환경에서 준법감시인의 국회 답변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선서하고 있는 은행장들 모습. (사진=파이낸스뉴스=김경석 기자)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선서하고 있는 은행장들 모습. (사진=파이낸스뉴스=김경석 기자)

한편, 오는 17일에 실시되는 금감원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준법감시인은 △박구진 우리은행 △이상원 국민은행 △이영호 신한은행 △이동원 하나은행 △홍명종 NH농협은행 △정윤만 BNK경남은행 △우주성 DGB대구은행 등이다.

지난해는 횡령· 배임 금융사고로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은행 등 5대은행장 모두가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내부통제 사고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결국 은행의 최고 경영진이 출석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이미 작년 국감에서 내부통제제도의 문제점이 지적돼 5대 은행장들이 국감에 출석해 호된 질책을 받자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공언을 한 바 있다.

당시 우리은행에서 700억원 규모 횡령사건이 발생한 것을 비롯 불법 외환송금 등 각종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도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에 대한 준엄한 책임 추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의 횡령금액을 비웃기라도 하듯 BNK금융그룹 경남은행의 3천억원 규모 횡령은 고객 돈을 훔친 역대급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럼에도 은행권의 최고 경영진에게 국감 불출석의 '특혜'를 준 것에 대해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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